사회 일반 [논쟁] 더탐사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저널리즘 논쟁 (2)...간첩조작 사건 보도 때 냉담했던 한겨레 기자들이 떠오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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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현기자 댓글 0건 조회 2,614회 작성일 22-12-21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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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보도를 하면, 해당 기자는 보도의 진실성 여부와 상관 없이 뜻밖의 곤란을 겪곤 한다. 보도로 인해 난처해질 이해당사자의 공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바로 언론사 내부에서 오는 견제와 공격을 말하는 것이다. 해당 기자가 곤란을 겪으면 언론사 동료들이 똘똘 뭉쳐 같이 싸워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해당 보도로 자신의 내부 위치가 흔들릴 것에 대한 우려 탓이라고 본다. 그러면 내부에서 되레 동료 기자를 흔들어 댄다. 나는 지금 <더탐사>가 겪고 있는 일도 이런 일련의 견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 <한겨레>에서 서울시공무원간첩증거조작 사건을 보도했을 때가 떠올랐다. 42eb7448efb00d4e50732401997383c5_1671635162_1101.png
■입증 안하고 의혹제기부터 하면 어떡하냐고?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 사건 취재과정도 더탐사와 유사했다 '충분히 입증도 안되는데 의혹제기부터 하면 어떡하냐.' 더탐사가 맞닥뜨린 질문이다. 과연 어디까지 입증해야 보도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고, 취재를 해온 기자 개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외부에서 취재 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결론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정답은 없다. 기자의 양심을 믿는다면, 그저 질문하면 되는 문제다. '또다른 입증 증거는 없는가요?' '함께 취재할 수 있도록 증거를 공유해줄 수 있는가요?' 물론 입증을 끝낸 뒤 의혹제기를 한다면 저널리즘적으로 완벽하겠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완벽한 저널리즘적 취재 환경을 보장하는가? 그래서 먼저 의혹제기를 한 뒤 사후 입증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증거조작 사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했을 때 <한겨레> 내부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이 사건을 자세히 복원해보면, 처음부터 간첩증거조작 사건이 밝혀진 게 아니다. 의혹제기를 먼저했고, 시끄러워졌고, 입증 압박을 느낀 내가 중국에 가서 증거를 더 찾아오고, 운이 좋게도 중국 당국이 내 부탁에 화답을 해주었기 때문에 조작이 입증이 되었다. 입증 단계에 이르자, 국정원 내부자의 양심선언도 터져나왔다. 2013년 가을 2심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 '국정원과 검찰이 증거를 조작해 재판에 제출한 것 같다'는 유유성씨의 설명을 들었다. 그냥 밥먹는 자리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였다. 너무 믿기지 않는 주장이라, 유우성씨의 주장을 검증하겠다고 판단했다. 유우성씨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의 동의를 얻지 않고 변호사를 찾아 좀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변호사가 내게 논리적인 설명을 하지 않으면 기자로서 유우성씨와는 앞으로 거리를 두는 게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증거조작 의혹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당연히 입증은 불가능해보였지만 언론으로서 충분히 의혹제기를 할만한 내용이라 판단했다. 2013년 11월 <한겨레>에 첫 의혹보도를 했다. <한겨레> 내부에선 "허재현이 음모론을 조성한다"고 대놓고 뭐라 하는 이들이 터져나왔다. 나는 그 때 <토요판>이라는 주말신문을 만드는 부서에 있었고 그 지면을 활용해 보도했다. 평일자 신문을 제작하는 법조팀은 대놓고 불쾌해 했다. 법조팀장은 수시로 내 자리를 찾아 "그렇게 기사를 쓰면 안된다"고 압박했다. 다행히 같은 팀이 아니었기에 나는 보도를 계속 할 수 있었지만, "충분히 취재가 된 내용이니 믿어달라"며 법조팀장을 설득했다. 내가 보도를 포기하지 않자 법조팀 내에서는 급기야는 나를 두고 "또라이"라고 조롱하는 이도 나왔다. 어떤 기자는 "허재현은 세상을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사는 기자"라고 비아냥 댔다. 나 보란 듯이 본인의 SNS에. 결국 나는 내 보도에 대한 입증 압박에 내몰렸다. 아니, 솔직히 오기가 생겼다. 완벽히 입증하지 않은 채 의혹제기부터 한 것 또한 비판받을 수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중국 출장을 다녀오기로 했다. 중국 출장이 뭐 대수인가 싶겠지만 중국은 당국으로부터 허락받은 특파원 아니면 취재를 불허한다. 특파원조차 허가받지 않은 다른 지역으로 취재 가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게 중국이다. 중국 내부 취재는 그렇게 만만하게 볼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법원에 제출된 증거들을 입수해 중국 공안국으로 찾아갔다. 기자의 신분은 감췄고 나는 재판 당사자인 척 위장했다. 어쩔 수 없었다. 취재하다가 중국 공안국에 체포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중국 공안국은 역시 내 예상 대로 "한국 법원에 제출된 자료(유우성 간첩 입증 증거)는 자신들이 제출한 자료가 아님"을 시인했다. 나는 중국 공안의 말을 몰래카메라로 찍었고 <뉴스타파>에 건네주었다. 영화 <자백>에도 이 장면이 상당 부분 쓰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국 공안이 내 앞에서 설명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이 사실을 통보해주는 것이었다. 내 앞에서 시인하면 뭐하나. 국정원과 검찰은 이 역시 무시할텐데. 재판에서 중요한 건, 언론보도가 아니라 직접적인 증거다. 중국 공무원을 설득했다. 제발 '사실확인서좀 써달라'고. 당연히 그들은 거절했다. 재판 당사자들도 아닌데 괜한 일에 연루되기 싫다는 것이다. 이해가 됐다. 일단 철수했다가 다음날 다시 찾아갔다. 계속 찾아갔다. 그러자 공안국 직원은 "일단 위에 보고를 할테니 자료를 두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 사실확인서를 보내줄지 여부는 자신도 보장하지 못한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부탁했다. 2014년 2월 뜻밖에 중국 당국은 한국 재판부에 사실확인서를 보냈다. 다들 알 듯, 이후 이 사건은 이를 계기로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 관련 이러한 취재 뒷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이날 출장은 <뉴스타파>와 같이 간 게 아니라서, 최승호 피디도 잘 모르는 일화이다. 기자가 기록자를 넘어서 사건 해결의 플레이어 역할을 한 것이기 때문에 예민한 문제이다. 불필요한 논란을 굳이 자초할 필요 없다. <뉴스타파>와 <한겨레> 어디에도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한겨레> 기자들이 나에게 보낸 조롱섞인 비난들은 차마 외부에 밝히기엔 겸연쩍은 일화이다. 오늘 이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것은, 저널리즘 논쟁을 위해서이다. ■설리번 판결의 의미..."국가기관 검증 과정에서 취재 오류 있어도 보도 감행해야" 취재방식에서 정답은 없다. 그저 기자의 양심, 그리고 최선의 고민만 있을 뿐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 사건은, 의혹제기를 한 뒤 사후에 기자가 발로 뛰어서 입증을 한 전형적인 케이스이다. 기자가 플레이어 역할을 하면서 한국 재판부를 설득해달라고 중국 당국을 압박하고 다녔다. 운이 좋기도 했지만, 입증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벌인 행동이었다.(*강진구 기자도 사후 입증에 자신이 있다고 판단해 보도한 것이라 추정한다) 어떻게 모든 보도를 완벽하게 입증을 끝낸 뒤 의혹제기를 하는가. 불가능하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세상에 꼭 알려야 할 사안이라면, 의혹제기를 한 뒤 사후에 입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섣부른 의혹제기로 훼손될 국정원과 검찰의 명예는 어떡하냐고? 세계 언론사에서 기념비적인 판단기준이 된 미 연방대법원의 '설리번 판결'(1964년)을 복원해보자. 국가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은 사인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과 달리 봐야 한다는 게 판결의 주요 논거다. 당연히 언론은 무엇이든 완벽한 보도를 하려 노력해야 하지만, 적어도 국가기관에 대한 검증 보도에서 오류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열어둘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윌리엄 브레넌 판사는 "설사 보도의 내용에 일부 사실이 아닌 사안이 포함돼 있더라도 명예훼손으로 기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해당 판결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공적인 토의는 본질적인 원칙이어야 하며, 이러한 토의는 정부나 공직자에 관한 격렬하고 신랄하며 가끔은 불쾌할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되며, 결고 억제되어서는 안되며, 활발하고 최대한 광범위하게 허용되어야 한다." <뉴욕타임즈>가 설리번 미 경찰국장 관련 보도에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아 그의 명예를 훼손했음에도 이런 판결을 한 것이다. 왜냐면, 국가기관은 무한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또한 사인에 가까운 기자가 이를 검증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현실을 미국 법원은 인정한 것이다. 보도의 오류때문에 발생할 국가공무원의 명예훼손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중요하고, 언론자유가 위축되면서 미국 사회가 맞닥뜨릴 민주주의의 위기와 손해를 더 크게 우려한 탓이다. '설리번 판결'은 지금까지도 세계 언론자유의 표준이 되었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 보도로 돌아가자. 만약, 국정원과 검찰이 입을 명예훼손을 우려해, 언론이 보도를 주저하거나 완벽하게 입증될 때만 기다리면서 세월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내가 중국 공안국을 압박하지 않았다면 확인서는 한국 재판부에 오지 않았을 거다. 그러면 유우성씨는 꼼짝없이 간첩으로 몰려 처벌 받았을 수 있다. 사실상 증거 판단은 하지 않는 대법원에서 판결을 뒤집기는 어려웠을 거다. 기자가 뒤에서 사건 해결의 플레이어 역할을 하는 게 맞는지, 입증보다 의혹제기가 우선하는 게 맞는지 저널리즘적인 고민을 하기보다 일단은 중국 공안국을 찾아 설득하는 쪽을 택했고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 다시 찾아오면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물론, 취재 상대가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이었다면 좀더 명예훼손 여부 등에 대해 고민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는 국가기관이었다. 42eb7448efb00d4e50732401997383c5_1671635148_2456.jpg
■더탐사를 비판하는 방구석 평론가들을 경계하는 이유...더탐사가 불편한건 윤석열만이 아니다 <더탐사>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 보도로 돌아가자. 상대는 법무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이다. 이들의 일정은 기자가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심지어 대통령의 사적인 자리에서는 휴대폰도 꺼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콰한 얼굴을 한 윤석열 대통령의 강남 술자리 사진이 한번 찍혀서 유출되었기에 대통령 경호실 쪽에서 그렇게 조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이기 때문에 언론이 더 완벽하게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국가기관에 대한 의혹제기 문턱은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하다. 의혹제기를 했다고 해서 때려잡을 게 아니라 국가기관이 의혹을 부인하고 싶다면 스스로 입증하면 된다. 공직자로서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한동훈 장관이 계속 써대는 <더탐사>를 향한 고발장 작성 시간의 십분일만 활용해도 이미 그는 알리바이를 입증했을 것이다. 추정컨대, <더탐사> 기자들도 나와 비슷한 판단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단순히 첼리스트의 말만 갖고 보도한 게 아니라 추가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의혹제기를 한 것이다. 충분히 언론으로서 취재가능한 수준의 증거는 모두 제시했다. 하지만 한동훈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은 그 어떤 것도 성의있게 입증을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왜 그걸 대통령과 법무장관에게 입증하라는 거냐'며 따진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윤석열 정부보다는 차라리 낫다고 봐야 하나. 적어도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간첩조작사건 진상조사팀'을 꾸려서 사건의 실체를 국가가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척이라도 했다. 이시원 검사 등의 휴대폰조차 살펴보지 않고 정직 1개월 처리를 하는 봐주기 진상조사에 그쳤지만, <한겨레>와 <뉴스타파>를 고소하고 압수수색하는 난리법석은 벌이지 않았다. <더탐사> 기자들이 추위에 떨면서 하나라도 더 입증하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 발로 뛰면서 기록하고 쫓아다니는 노력은 보지 않고, "더 입증한 뒤 의혹제기 했어야 한다"고 편하게 떠드는 '방구석 평론가'들이 원망스럽다. 대체 어디까지 떠먹여 줘야 만족할 것인가. 이정도 의혹제기를 했으면 한번쯤은 같이 나서서 취재해볼 생각은 왜 못하는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보니 과거 <한겨레>에서 겪었던 불행했던 기억들까지 소환하게 됐다. 외부에선 내가 <한겨레>에서 큰 격려를 받은 것으로 알지만 정반대에 가까웠다.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가 솔직히 부러웠다. 같은 보도를 하고 있는데 <한겨레>는 최승호 피디를 비판하지는 않았다. 되레 <한겨레>는 최승호 피디에게 '리영희 언론상'을 수여했다. 같은 보도를 한 나는 수상자 명단에서 빠졌다. 최 피디에게 원망은 없다. 최 선배가 아니었다면, 나는 <한겨레>에서 내부 보도 투쟁을 할 용기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최 피디는 '리영희 언론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언론인이다. <더탐사>의 보도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들을 흠집내는 데 안달나 있는 이들의 마음 속에 혹시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한다. <더탐사>가 시민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 거듭나는 것이 과연 윤석열 정부에게만 불편한 일일까. 진영 내부의 '게으른 입선비'들을 내가 함께 경계하고 나선 이유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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